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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오늘/책 읽기

여행의 이유 (김영하)

by 늘해랑한아 2022.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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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님은 알쓸신잡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의 박학다식함과 툭툭 무심하게 내뱉지만 심지어 재밌기까지 한 화법에 참 멋있는 작가님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던 작가의 이미지를 깨뜨려준 작가였다.

 

알쓸신잡은 다 챙겨 보면서 정작 책은 한 번도 읽지 않았다.

 

드디어 여행의 이유라는 책으로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다.

 

작가님이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의외의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첫 해외여행은 홍콩이었는데, 교회에서 함께 간 봉사활동 여행이었다.

 

낮에는 봉사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관광을 했다.

 

고단했지만 함께 간 사람들이 너무 친하고 좋은 사람들이었고, 계획대로 움직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첫 해외여행이었지만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만 지내고 왔다.

 

첫 여행 덕분에 해외여행에 대한 벽을 낮출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의외로 나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낯선 음식을 맞닥뜨렸을 때, 외국인과 대화를 해야 할 때 등등 익숙하지 않은 나라와 환경에서 반응하는 나의 모습이 새로웠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p. 51

 

 

그리고 두 번째 여행은 신혼여행이었다.

 

우리 부부는 해외여행 초보자임에도 불구하고 패키지로 가지 않았다.

 

자유여행으로 싱가포르-코사무이를 다녀왔는데, 정말 사고의 연속이었다.

 

빡빡하게 세운 계획들은 허무할 정도로 의미가 없었다.

 

싱가포르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갔지만 남편이 놀이기구를 못 타도 그렇게 못 탈 줄이야.

 

얼굴까지 하얗게 질린 사람에게 돈 아깝다고 타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들어갔던 스타벅스에서는 컵을 깨뜨려 구매를 하게 되었고,

 

예약까지 했던 식당에서의 음식은 가격에 비해 맛이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선물을 사서 코사무이로 입국했더니 보따리장수로 몰려 뒤쪽 사무실에 끌려(?) 갔다.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영어라도 잘했다면 나았을 텐데.

 

둘이서 진땀을 빼며 아는 단어를 동원해 설명을 하고 벌금을 내고 무사히 풀려났다.

 

코사무이에 머무는 날들 내내 비가 내렸다.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못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거지꼴이었지만 알 수 없는 끈끈함이 생겼다.

 

흡사 남자들이 군대에서 느끼는 전우애 같은 거랄까.

 

계획대로 된 것을 찾는 게 빠를 정도로 난리난리 생난리인 여행이었지만 지금도 남편과 얘기한다.

 

그래도 재미있었고 오히려 고생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겠다고.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이다.

 

 

세 번째이자 나의 마지막 해외여행은 친구 부부와 함께 간 베트남 여행이었다.

 

동행자가 늘어서 그런지 신혼여행 때보다 편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여행을 즐겼다.

 

친구 부부와는 국내여행을 수도 없이 함께 다녔기에 해외여행을 선뜻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미 서로의 여행 스타일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즐겁게 잘 다녀왔다.

 

다음 태국 여행도 계획을 하고 비행기와 숙소까지 예약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무기한으로 미뤄졌다.

 

게다가 그 사이에 나는 기쁨이 까지 가지게 되어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마 친구 부부와 여행을 가려면 조금은 시간이 더 흐른 후가 되겠지.

 

 

책을 읽어보면 여행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데 내가 읽기에는 막 쉬운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밌었다. 작가님이 보여준 다양한 여행 이야기와 여행을 하는 이유들이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그중에 가장 나에게 와닿은 이유가 있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p. 205 ~ 206

 

나도 여행이 하고 싶어질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안전하지만 가끔씩은 지루하게도 느껴지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을 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을 때였던 것 같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의 일상에서 느끼던 안정감이 그전과는 다르게 느껴지고 일상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여행은 정말 신기하다. 꼭 새로움을 깨닫는다기보다 그냥 그 자체로 자극이 된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게 나의 여행의 이유이다.

 

 

 

작가님의 깊은 글만큼 내가 깊게 느끼지 못함이 아쉽다.

 

여행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정말 다채로운 경험들과 생각들을 확장해나가는 작가님이 대단하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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